'대통령님, 베트남에 백신 좀', 삼성도 애태운 나이키 편지

"미국인들이 다시 화장지를 사재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지난 1일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불거진 '더블딥'(일시적인 경기회복 뒤 찾아오는 침체 현상) 우려에 대한 기사를 다뤘습니다. 미국 현지에서 화장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내용입니다. WSJ는 '화장지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황 구매)이 다시 시작된 것을 두고 미국 현지의 델타 변이 확진자 증가와 함께 변이 바이러스의 피해가 가장 심한 동남아시아발(發) 경기침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가 겹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국에서 화장지 판매대에 사람들이 몰린 것은 지난해 11월 코로나19 3차 대유행 이후 9개월여만입니다. 글로벌 생산기 지로 불리는 동남아의 델타 변이 확산이 단순한 공급망 차질을 넘어 미국·중국 등 세계 주요국에 영향을 미치면서 글로 벌 경제 더블딥의 진원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며 대외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기업들도 미중의 경기 재침체 조짐에 촉각을 곤두세운 상황입니다.

1. 델타 변이 타격, 동남아서 美·中·전 세계로

동남아에는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 등 차량용 반도체 업체의 생산공장이 밀집해 있습니다. 통계 전문기관 나틱시스에 따르면 미국은 반도체 수입의 절반가량을 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 5개국의 현지 공 장에서 수입합니다. 중국은 데이터 처리장비의 38%와 통신장비의 29%를 이들 5개국에 의존하기에 동남아 현지 상황이 미중의 완성차·통신산업을 좌우하는 셈입니다.

 

 

 

 

 

소비재 부문에서도 미중의 동남아 의존도가 높습니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신발의 30%가 지난달 봉쇄령이 발령된 베트남 산입니다. 베트남은 의류와 신발을 합해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많은 물량을 미국에 공급합니다. 나이키를 비롯해 80여 개 신발·의류업체에서 지난달 중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베트남에 더 많은 백신을 기부해달라"는 서신을 보낸 이 유입니다.

한국 역시 동남아 '셧다운'(가동 중단)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베트남의 코로나19 확산으로 휴 대폰 사업 매출이 타격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동남아에 부품공장이 몰려있는 현대차도 지난달 말레이시아 현지 공장의 ECU(엔진 컨트롤 유닛) 공급 차질로 그랜저·GV80 등에 탑재되는 '2.5 가솔린 터보 엔진' 생산을 일시 중단했습니다. 동남아 현지 공장을 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돌릴 수 있을 때 최대한 공장을 돌리라는 게 현재 지침"이라며 "수요와 물류는 따지지도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2. 생산·물류 차질 겹쳐 인플레 우려 재부상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해상 화물 운송 가격이 350% 이상 높아진 상황에서 동남아발 생산 차질에 이어 항구 폐쇄가 잇 따르는 상황도 더블딥 가능성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합니다. 지난달 11일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컨테이너항 닝보-저우샨항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중국이 항구의 25%를 폐쇄하자 전 세계 건화물 선운 임지수(BDI)가 7월 중순 이후에만 10%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달 초 공개된 ADP 전미 고용보고서에는 이미 이런 여파가 뚜렷이 드러났습니다. 미국의 8월 민간부문 고용은 37만 4000명 늘어난 데 그쳐 시장 예상치(60만 명)를 한참 밑돌았습니다. 제조업 경기 선행지표인 제조업 구매관리자 지수(PMI, IHS마킷 조사) 확정치(계절조정치)도 7월 63.4보다 낮은 61.1로 집계됐습니다. 경기침체 조짐이 더 심각한 곳은 중국입니다. 8월 PMI가 49.2로 코로나19 충격이 밀어닥친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으로 50에 못 미쳤습니다.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50 이하면 위축을 뜻합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동남아 비상상황이 앞으로 몇 주 더 이어지면 글로벌 도미노 여파에 따른 더블딥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며 "올해 우리 정부의 경제성장률 4% 달성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9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6% 올랐으며 이는 7월(2.6%)에 이어 다시 연중 최고 상승률입니다. 정부 예상과 달리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2017년 1∼5월 이후 4년 만에 소비자물가가 5개월째 2%를 넘었습니다.

3. '세계의 공장' 동남아 때린 델타 변이..車·가전·패션 피 마른다

 

'글로벌 생산 기지' 동남아 시장에서 코로나19(COVID-19) 델타 변이가 확산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주요 기업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5일 베트남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현지 공장 가동률이 최근 30%대까지 떨어졌으며 이는 베트남 정부가 지난달 23일부터 호찌민시의 외출을 전면 금지하는 완전봉쇄령을 내리면서부터입니다. 삼성전자 호치민 공장의 경우 가동이 중단되면 하루 손실액만 17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베트남 공장 가동 차질 여파는 이미 판매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TV의 경우 배송까지 한 달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공장 가동을 정상화하더라도 현지에 동반 진출한 공장에서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4분기 가전 성수기 판매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공장이 있는 박닌성 상황에도 촉각을 곤두세운 상황입니다. 박닌성 공장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글로벌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담당하는 생산기지입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생산기지에 문제가 생긴다면 갤럭시 Z폴드 3과 플립 3 사전예약 흥행으로 모처럼 달궈진 분위 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4. 현대차 베트남 생산차질에 말레이시아발 부품 수급난

 

베트남 현지 기업과 합작 공장을 세운 현대차도 심란합니다. 베트남은 현대차가 2011년 자동차 반조립제품(CKD)을 베트 남에 수출해 현지 업체인 탄 콩 그룹과 함께 생산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해 2017년 현 대탄 콩 제조 베트남(HTMV) 합작사를 세우는 등 공을 들였던 곳입니다.

 

 

 

특히 2019년부터 연달아 동남아 시장 절대 강자인 도요타의 판매량을 크게 앞지르는 상황이어서 이번 코로나19 델타 변 이 확산이 현대차 입장에서는 더욱 위협적입니다. 현대차는 베트남 판매 물량 전부를 호찌민시에 있는 합작 공장에서 생산합니다.

 

 

 

 

 

현대차 그룹의 더 큰 문제는 말레이시아발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입니다. 자동차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전자제어장치(ECU)  부품 및 반도체 부품 수급 차질로 국내 공장에서 생산량까지 조절하는 상황입니다. ECU 등을 생산하는 말레이시아 부품 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다수 발생해 공장 가동률이 20%대로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차는 제조 공장 라인을 일부 시간에만 가동하거나 주말 특근 없애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중입니다. 부품 부족으로 하루 평균 수백 대의 생산 차질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지금 주문해도 올해 받지 못하는 차량도 상당수이며 인기 모델인 아반떼는 6개월, 투싼은 최대 8개월까지 출고 기간이 늘어났습니다. 전기차 아이오닉 5는 사실상 올해 받기에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당장 국내 판매 실적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난 8월 현대차는 올 들어 처음으로 내수와 수출이 동반 감소하며 부진한 실적을 보였습니다. 내수 판매는 5만 1034대로 전년 대비 6.5% 감소했고 해외 판매는 24만 3557대로 7.8% 줄었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매일 부품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대응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5. 생산·유통 전 과정에서 타격 받은 패션업계…중소벤더사 도산 위기 처할 가능성

패션업계는 한창 F/W(가을/겨울) 시즌 제품을 대량 생산할 시점에 생산·유통 등 전과정에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세아상역·한세실업·한솔섬유로 대표되는 한국 의류 수출의 대표 기업은 원단을 주로 중국과 베트남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이들의 봉제 공장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아이티, 방글라데시에 분포돼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 호찌민 지역의 셧다운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되면서 미국, 유럽에 있는 글로벌 의류 브랜드와 백화점 빅 바이어들에 납품할 3분기 물량이 선적 지연되는 중입니다.

일부 물량은 코로나19 영향이 덜 한 지역의 공장으로 생산을 돌리고 있으며 납기 지연으로 에어(비행기) 운임이 필요해지자 운임비 등 비용 부담이 크게 가중됐습니다.

3대 의류 벤더(공급사)보다 열악한 중소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기업의 경우 비행기 운임을 감당할 수 없어 오더를 자진 반납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에어 운임의 경우 운송비용이 선박의 2배에 달합니다. 중소 의류 벤더 사들은 지금과 같은 셧다운이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도산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학업계는 당장 공장 잠정 중단 등 큰 피해는 없지만 현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효성 관계자는 "베트남 나이론·스판덱스 공장, 폴리프로필렌 공장이 아직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확산세에 대비해 외부와 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장 내부에 숙식이 가능토록 조치를 취해놓고 각종 방역조치를 강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롯데케미컬은 말레이시아 폴리에틸렌(PE) 공장에서 최소 인력만 운영하면서 재택근무도 병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부 화학기업은 동남아 시장 상황 악화에 따른 현지 매출 감소를 우려해 대응 조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지역에서의 3분기 매출 감소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 외 지역 수출 물량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구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6. "베트남에 백신 지원해달라" 美 CEO들이 나선 이유

글로벌 제조기지 동남아시아가 코로나19 델타 변이로 멈춰 선 영향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원자재와 반도체 칩 등 제조국 발 공급난이 가중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상품 수요와의 격차는 커지고 결국 전 세계 물가가 직격타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듭니다.

5일 외신 등에 따르면 베트남은 최근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서면서 호찌민 등 일부 도시에 완전 봉쇄 조치를 내렸고 자연히 공장 역시 폐쇄됐습니다. 베트남엔 자동차와 의류, 가전제품 등 노동집약 산업들이 몰려있습니다. 전체 제품의 28%를 베트남에서 조달하는 아디다스는 베트남발 공급 차질로 인해 "올해 하반기에만 6억 달러(7000억 8000만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소비자 가격 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라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밝혔습니다.

필리핀과 태국, 말레이시아 등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반도체 패키징 라인이 몰려있는 말레이시아는 하루 2만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나오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공장 폐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반도체 칩 부족으로 인한 자동차 산업 피해가 또다시 재현될 모양새입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동남아 생산차질로 칩 품귀 현상이 지속되면서 올 한 해 완성차 생산량이 710만 대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동남아 공장 마비로 인한 공급 우려로 기업들은 대체 공급업체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물류비용까지 겹치며 여러 비용이 증가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세계 각국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졌습니다.

당장 한국부터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 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올랐습니다. 전달인 7월 2.6%를 기록한 데 이어 두 달 연속 연중 최고 상승률입니다. 5개월째 물가 목표치인 2%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3분기부터 물가가 안정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과 정반대 흐름입니다.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모두 비슷한 기류입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7월 지난해 동기 대비 5.4%를 기록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물가상승률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집값이 무섭게 치솟고 있습니다.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가 집계한 6월 전미 주택 가격지수는 1년 전보다 18.6% 올랐습니다. 이는 1987년 통계를 시작한 이래 3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며 지난해 5월부터 13개월 연속 상승세입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인플레이션도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유럽연합(EU) 통계당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예비치)은 지난해 동기 대비 3% 상승했고 이는 2011년 11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 8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대비 3.9% 올라 통일 이후 28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WSJ은 "반도체 공급 부족이 물가를 끌어올렸다"라고 전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코로나19 델타 변이로 인한 공급 부족 사태가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고 짚었습니다.

 

 

 

 

 

델타 변이가 잡히지 않고 계속 확산할 경우 향후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도 크다. 설상가상 새로운 진앙이 된 동남아 국가 들의 백신 접종률은 여전히 낮은 상황입니다. 블룸버그 백신 통계 사이트에 따르면 3일 기준 베트남에서 1회 이상 백신을 접종한 비율은 18.1%, 백신을 2회 정말 접종한 비율은 2.8%에 그칩니다. 인도네시아의 접종 비율은 1회 이상 24.1%, 완전 접종 13.7%입니다.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의 낮은 백신 접종률이 공장 운영 중단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백신 기증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WSJ은 보도했습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달 말 동남아 순방 당시 베트남을 방문해 아시아 공급망 우려를 알고 있다며 백신 기증 등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7월부터 모더나 백신을 베트남에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자료출처 : https://news.v.daum.net/v/20210906052001248